지난 연말 태국 여행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 출발 전 안전교육에서 한 문장이 귀에 꽂혔습니다.

“산소마스크는 보호자가 먼저 착용하고, 어린이나 노약자를 도와주세요”

그냥 흘러들을 수 있는 안전 교육인데 그날따라 요 문장이 계속 떠올랐죠. 그리고 동시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어린이, 노약자가 아닌 보호자인 어른이자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실제로 높은 고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10-30초 내로 정신을 잃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보호자인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살피라는 의미이죠. 그렇지 않고 그들을 씌우려다 나까지 정신을 잃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살고 그 주변을 살펴야 한다. 흘려들을 수 있는 교육에서도 나름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부담되는 요청을 받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실 겁니다. 가족, 친구, 지인, 회사에서도요. 심지어는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가스라이팅 하기도 합니다. ‘네가 도와줘야지 산다.’, ‘너 지금 잘 되는데 이거 하나 못해주니’ 도와주지 않으면 굉장히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상황을 조성하면서요. 아니, 심지어는 아무런 요청도 없는데 내가 먼저 걱정하고 연민하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나’를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걱정할 시간에 내 스스로를 걱정하는 시간은 얼마나 쓰고 있는가? 내가 지금 도울 수 있는 상황인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안정적인가? 거절은 참 어렵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고, 나부터 잘 살자는 마인드를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내가 바로 서야 그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것이고, 눈 앞에 보이는 작은 도움보다는 본질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먼저 연민하고 걱정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거죠. 내가 과연 그들을 연민/걱정할 자격이 있는가? 또한, 주변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과거 그들의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 결과에 왜 ‘내’가 감정을 쓰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나요?

 

저도 제 인생을 바치면서 누군가를 도와줬던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다 해결되었지만 남은 건 별로 없었습니다. 모든 힘든과 고통은 추억이라고 하잖아요? 직접 경험해 보신 분들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경험은 필요하다? 내가 성공하면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할 필요도 없는 것도 경험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꺼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내가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들은 잘 해낼 겁니다. 아니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타적인 마음인 것이죠. 내가 먼저 살고, 내가 문제 해결능력을 갖춘 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니까요. 그 거절의 과정과 마음은 불편하겠지만 이런 상황을 겪고 계시다면 나를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산소마스크는 내가 먼저 써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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